결혼하기 전에 나는 책값은 아끼지 않겠다는 생각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가족들이 생기니 책값도 조금 부담이 되고 책을 쌓아둘 넓은 공간도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결혼 전부터 가지고 있던 책들 중 대부분을 중고책방에 정리했다.
아이들이 생긴 후로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장에서 책을 뽑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어 그중 아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은 구입하고 나머지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책 구경을 하러 가끔 들르는 서점에 아이들과 함께 갈 때면, 책을 고르고 사는 일이 자연스러워 지도록 직접 책을 골라서 구입하게 한다. 책을 고르는 안목을 조금이라도 길러주려고 그 책은 좋다 나쁘다 토를 달지 않으려고 애써 입을 닫고 있다.
불편한 편의점은 중학생인 큰 아이가 고른 책이다. 일단 표지가 무척 예쁘다. 그림에 관심이 많은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체이기도 하다. 표지가 너무 화사해서 오히려 글 내용에는 불신이 생겼지만 아이가 고른 책이라 별말 하지 않았다. 아이가 읽어보고 재미있다고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가벼운 책을 읽고 싶어 골라 읽었다.
표지를 가만히 보니 우리 부부가 노후를 보내고 싶은 건물에 작은 편의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노후는 딱 저 정도, 내가 관리 할 수 있을 자그마한 건물에 조그마한 소일거리를 만들어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줄곧 하는 중이었다.
편의점에 오가는 사람들은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 어쩌다 보니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희망을 찾아간다. 편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정의 가는 곳이다. 연금으로 살아가는 퇴직 교사인 사장님은 돈을 벌려고 편의점을 운영하지 않는다. 자신의 편의점에 생계를 맡기고 있는 직원들의 생활비만 해결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세상에 대한 염치라고 말한다.
그 편의점에는 노숙자 출신의 기억을 잃은 독고,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편의점 알바는 잘하는 취준생 시현, 아들과 담을 쌓아 답답함이 쌓인 오여사, 회사에서 치이고 가족에게는 왕따를 당한다고 생각하는 세일즈맨, 불법과 합법을 오가며 한탕을 노리는 민식, 황혼 이혼 후 외롭게 늙어가는 퇴직 경찰 등이 나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려 한다.
중간쯤 읽다보니 영화로 만들면 괜찮을 얘기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인공은 누가 좋을까, 이 사람 저사람 떠올리다 조진웅 배우가 독고 역에 어울리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에는 불편한 편의점을 희곡으로 쓰려는 작가도 등장한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가볍지 않고 속이 상하면서도 따뜻해지는 이야기이다. 나는 우리 가족들이 세상에 치일 때 돌아와서 쉬는 곳이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남편과 결혼하면서 남편을 애잔하게 바라봐주자는 결심도 했었다. 내가 그 결심을 잘 지키고 있는지 우리 가족들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2편도 나왔다고 한다.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
'심야책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를 읽고 (0) | 2024.01.19 |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을 읽고 (0) | 2024.01.12 |
<파친코>를 읽고 (1) | 2023.11.21 |
<괴짜 화가 앙리 루소의 환상 정글>을 읽고 (1) | 2023.11.01 |
<참 괜찮은 태도>를 읽고 (0) | 2023.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