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을 읽은 어제까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전혀 다른 소설이 앵무새 죽이기라고 여기며 수십 년을 살아왔다. 앵무새죽이기라는 소설을 읽은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 기억 속 흥미 위주의 소설이 왜 최고의 소설로 추앙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 읽고 싶은 책을 쟁겨놓을 때 이 책을 구입해서 책장에 내내 꽂아놓았다가 어제서야 골라내 포장비닐을 뜯었다. 소설을 비닐로 꽁꽁 싸놓은 이유는 멋들어지게 만든 양장책이라고 여기고 그걸 보호까지 하려고 하는 출판사의 과잉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무겁고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양장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잘못 골랐다고 투덜거리며 책 비닐을 뜯어 펼쳐보니 만화책이다. 당황했다. 그래픽 노블로 각색해서 출판한 책이라는데 책 표지 어디에도 그래픽 노블이라는 말이 없었다. 어쩐지 책값도 무지 비싸고 비닐로 꽁꽁 싸매 놨더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책을 구입한 나를 탓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탐이 강한 내가 점심도 거르고 한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세시간 정도 걸린 모양이다. 만화로 그려낸 소설은 이해가 쉬웠고 빨리 넘어갔다.
이번에 깨달은 가장 놀라운 사실대로 내가 아직 앵무새죽기기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원작과 만화 중에 어느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만화책으로도 주제의 전달은 충분했던 것 같고 짧은 시간동안 긴장을 유지한 채 끝까지 읽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듯 하다.
긴 흐름의 책을 읽어내기 힘들어하는 요즘의 중고등학생들에게 권해도 좋을 책이라 아이들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했다. 1930년대 경제공황과 미국의 기독교문화, 미국의 남북전쟁과 흑인에 대한 차별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서 아이들의 질문에 기본적인 대답은 해 줄 수 있어야겠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7~8살 여자아이 스카웃의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아버지인 애니커스 핀치 변호사의 삶과 이념을 바라보는 태도가 깊이 와 닿았다. 핀치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나와 다른 신념이라도 끝까지 지키는 어른들을 훌륭하다고 칭찬하고, 백년동안 계속 졌다고 해도 싸움을 다시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알려주며, 조금이라도 진전할 수 있다면 질 것이 분명한 싸움에도 나서야 할 이유가 있다고 말해준다. 나는 비겁해서 이렇게 가르치지 못한다.
또 타인들과 조금은 다른 삶을 사는 자신을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히려 술주정뱅이인척해서 타인들이 나를 헐뜯을 여지를 주는 레이먼드의 삶의 태도에서도 감명을 받았다. 타인의 평가와 이해보다는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에 더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시대에서 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낸 것이라 본다.
책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앵무새를 죽이지 말라고 한다.
8살의 눈으로 어른을 봤다고 하기에는 아이들이 하는 질문과 어른들의 대답의 수준이 조금 높아 어색함이 있지만, 하퍼 리, 작가 본인의 어린 시절과 겹치는 부분도 있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아주 괜찮은 책을 읽었다. 이 감동이 조금 사라지고 글의 내용이 흐릿해 질 무렵 소설책으로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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