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영화를 볼 때 나는 좀 불편하다.
윌 헌팅은 천재성이 있어서 구제받았다. 수학자로서의 그의 천재성을 발휘시키고자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수학자가 그를 끌어주고, 뛰어난 심리학과 교수를 만나게 해주고, 그 교수는 진심으로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해준다. 천재가 아니라서 그 구질구질한 삶에서 나올 방법이 없는 사람들은 어디서 희망을 얻어야 하나?
빌리 엘리어트를 볼 때도 그랬다. 빌리는 발레에 재능이 있다. 그 재능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와 형은 자신의 삶을 바친다. 그 덕에 빌리는 무너져 가는 탄광촌을 벗어나 자기의 꿈을 펼친다.
내가 꼬였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영화가 좋다고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못마땅하기도 하다.
나는 이런 영화가 불편하다. 천재성이 없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은...
나에게 진심으로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어떤 사람도 만날 기회도 없고, 나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를 만나기도 어렵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감정 이입이 잘되지 않는다.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볼 수 있듯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하나?
그런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는 결론으로 점점 다가가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자기는 여기서 살아야 할 운명이지만 너는 벗어날 수 있으니 여기를 떠나라고 보내는 친구인 벤 애플렉이 이해가 된다.
보낼 수 있어서 즐겁지만, 나는 능력이 없으니 모든 것을 받아드리는 그에게서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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